[부고] 로돌포 아쿠냐, 치카노학자 향년 93세로 영면

로돌포 F. 아쿠냐(Rodolfo F. Acuña) 별세, 치카노 학문·운동의 거목.

고인 사진
로돌포 F. 아쿠냐(Rodolfo F. Acuña)

로돌포 F. 아쿠냐(Rodolfo F. Acuña) 교수가 향년 93세로 별세했다.
그의 별세 소식은 학계와 시민운동 전반에 큰 애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쿠냐는 멕시코계(치카노/치카나)(Chicano/Chicana)의 역사와 민권 운동을 학문과 실천으로 잇는 대표적 지성으로 평가받았다.
학자이자 활동가로서 치카노 학문을 제도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1932년 5월 18일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미국)에서 태어났다.
학문적 여정은 남부 캘리포니아 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USC)에서의 박사 학위 취득으로 이어졌다.

박사 과정 동안 야간 노동과 학업을 병행하며 가족을 돌보는 고된 시기를 견뎌냈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그의 연구와 교육관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대표 저서인 '오큅파이드 아메리카: 어 히스토리 오브 치카노스(Occupied America: A History of Chicanos)'는 1972년 초판 이후 여러 차례 개정되어 치카노 역사 연구의 표준서로 자리 잡았다.
이 저서는 멕시코계 미국인의 역사와 해방 투쟁을 학술적 언어로 체계화한 획기적 저작으로 평가된다.

아쿠냐는 학술서 외에도 초중등과 커뮤니티 칼리지를 위한 교재를 집필하며 교육 현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의 저술은 여러 세대의 학생과 연구자에게 기초 자료가 되었다.

1969년 캘리포니아 주립대 노스리지(California State University, Northridge, CSUN)에서 치카나/치카노(Chicana/o) 학과를 공동 설립하고 초대 학과장으로 재임했다.
그는 해당 학과를 미국 내 주요 규모로 성장시키며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현장 활동에서도 두드러진 업적을 남겼다.
1968년 치카노 시민권 운동과 El Plan de Santa Barbara의 제안 등은 그의 운동적 면모를 보여준다.

아쿠냐는 노동·지역사회 전략센터(Labor/Community Strategy Center) 설립 멤버로 참여했으며 엘살바도르(El Salvador) 관련 국제 현안에도 참여했다.
또한 교육 기회 확대를 위한 소송과 공론화 활동에도 꾸준히 앞장섰다.

그의 연구는 멕시코계 미국인 노동자와 노동계급의 관점을 강조하며 학술과 사회운동을 연결했다.
이러한 실천적 접근은 동료와 제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남겼다.

학문적 공로는 구스타부스 마이어스 상(Gustavus Myers Award) 수상 등으로 외부에서 인정받았다.
때로는 분명한 입장 표명으로 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으나 그의 작업은 치카노 운동과 학문의 성장을 촉진했다.

비판과 평가를 수용하면서도 그는 멕시코계 미국인들이 자신의 역사를 연구하고 교육할 권리를 옹호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그의 제도적·교육적 유산은 앞으로도 학계와 현장에서 계속 거론될 것이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자녀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은 사생활 보호를 요청했으며 장례 일정은 추후 공개될 예정이다.

고인의 별세 소식은 학계와 활동가 사회에 깊은 충격을 주고 있다.
그의 삶과 업적은 치카노 공동체와 더 넓은 학문 공동체에서 오래 기억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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