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원, 한국계 미국 언론의 선구자 별세
2025년 3월 9일, 한국계 미국 언론의 선구자 이경원(K.W. Lee)이 향년 96세의 나이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영면에 드셨습니다. 사회 정의와 아시아계 미국인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그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이번 비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슬픔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고인의 생애
고인은 1928년 6월 1일, 당시 일본령 조선의 개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정의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이며, 한국 대학교에서는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1950년, 그는 미국으로 이주하여 웨스트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였으며, 1955년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그는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이철수 사건과 같은 언론 보도를 통해 잘못된 정의를 폭로하며 아시아계 미국인 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했습니다. Kingsport Times-News, Charleston Gazette, 그리고 Sacramento Union 등의 주요 신문에서 기사를 작성하며 사회 정의를 끊임없이 옹호했습니다.
고인의 업적
고인의 대표작은 이철수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발생한 살인사건과 관련된 잘못된 유죄 판결을 다룬 것으로, 고인의 탐사보도 기사들은 재심을 이루어 냈습니다. 이는 결국 이철수의 석방으로 이어지는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개인을 구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시아계 미국인 사회의 단결과 정치적 목소리에도 기여하였습니다. 그의 글과 작품은 많은 저널리스트들에게 기준과 영감을 제시하였습니다.
고인의 인간적인 면모
고인은 한평생 사회적 불의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던 기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며 항상 겸손했고, 자신의 커뮤니티에 헌신적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했던 동료들은 그를 멘토로 기억하며 따뜻한 가르침과 지혜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언론 활동 외에도 아시아계 미국인 단체와 커뮤니티를 지원하며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의 헌신과 열정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남은 이들을 위한 메시지
고인은 세 자녀와 여섯 명의 손자, 여러 명의 증손자를 남겼습니다. 유족들은 그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K.W. Lee Center for Leadership에 기부를 요청하며, 그의 뜻을 이어갈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장례는 가족과 가까운 이들만 참석한 소규모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고인의 업적은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교훈을 제공하며, 그의 진정성 있는 삶은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자리 잡을 것입니다. 그의 결단과 용기는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